“부루마불에 TCG를 얹었다.” 컬드셉트를 한 줄로 요약하려는 시도는 거의 항상 이 문장에서 시작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설명은 이 시리즈가 왜 29년째 살아남았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합니다.
주사위를 굴려 칸을 이동하고, 도착한 땅에 크리처 카드를 소환해 영지로 삼고, 남의 영지를 밟으면 통행료를 냅니다. 여기까지는 보드게임입니다. 그런데 그 통행료를 내지 않으려면 손패의 크리처로 침공해야 하고, 침공하려면 아이템 카드와 스펠의 상성을 읽어야 하고, 애초에 그 카드들을 게임 시작 전에 ‘북(덱)’으로 짜 왔어야 합니다. 운과 계산이 매 턴 교차하는 이 구조가 컬드셉트의 전부이자, 지금까지 이 시리즈를 대체한 게임이 없는 이유입니다.
2026년 7월, 10년 만의 완전 신작 컬드셉트 비긴즈와 1편 복각판 컬드셉트 더 퍼스트가 나란히 발매됐습니다. 좋은 핑계입니다. 세가새턴 시절부터 스위치 2까지, 계보를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원점: 컬드셉트 (세가새턴, 1997)

오미야 소프트가 만든 첫 작품입니다. 수록 카드는 360장. 하필 PS1에 점유율을 내주며 저물어 가던 새턴에서 출발한 탓에, 발매 당시에는 “전략 보드게임”이라는 낯선 장르 표기와 함께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1편이 이미 완성형에 가깝습니다. 4속성(화·수·지·풍) + 무속성, 영지 연쇄로 통행료가 뛰는 구조, 50장 북 구성, 크리처·아이템·스펠의 3분류. 이후 30년간 시리즈가 한 일은 대부분 이 골격을 다듬고 카드를 갈아 끼우는 작업이었습니다.
음악은 코다이 유조와 야나가와 츠요시가 맡았습니다. 베어 너클의 그 코다이 유조입니다.
2. 확장과 이식: 익스팬션 (PS1, 1999) 익스팬션 플러스 (PS1, 2000)
새턴판의 버전업 이식작입니다. 밸런스가 무너져 있던 카드 10장을 빼고 새 카드 10장을 넣어 총 361장이 됐습니다. 컬드셉트가 처음으로 ‘많은 사람이 실제로 플레이하는 게임’이 된 시점이 여기입니다.
익스팬션 플러스는 그 염가판인데, 대회 한정 배포분을 포함한 추가 맵 20면이 들어 있어 사실상 완전판 취급을 받습니다. 2008년 11월부터는 게임 아카이브스를 통해 PS3/PSP로도 배포됐습니다.
3. 하나의 정점: 세컨드 (드림캐스트, 2001) / 세컨드 익스팬션 (PS2, 2002)

수록 카드는 459장입니다. 일러스트와 그래픽이 크게 올라갔고, 카드 풀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음악은 이 작품부터 이토 켄지가 맡습니다 — 로맨싱 사가와 사가 프론티어의 그 사람입니다.
PS2로 넘어간 세컨드 익스팬션은 492장으로 늘어난 데다 밸런스를 다시 손봤고, 많은 올드 팬이 “시리즈의 밸런스적 정점”으로 꼽는 판본이 됐습니다.
그리고 한국 팬에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세컨드 익스팬션은 2003년 10월 16일, PS2로 한국어 정식 발매됐습니다. 이후 23년간 컬드셉트의 공식 한국어판은 이것뿐이었습니다. 북미에도 2003년 12월 그냥 Culdcept라는 제목으로 나갔습니다.
4. 대형화: 컬드셉트 사가 (Xbox 360, 2006)

4년 만의 완전 신작이자 시리즈 첫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 진출작입니다. 수록 카드는 487장. Xbox Live 온라인 대전을 정면으로 붙였고, 시나리오에 우부카타 토우를 기용하고 아바타 커스터마이징을 넣는 등 ‘규모를 키운’ 작품입니다.
북미판은 2008년 2월 반다이남코가 발매했습니다. 지금도 해외 팬 사이에서 “이거 하려고 미국판 360을 샀다”는 회고가 나올 정도로, 서구권에서 시리즈 인지도를 만든 물건입니다.
단, 하드웨어 선택은 잔인했습니다. 일본 시장에서 Xbox 360은 판매량이 처참했고, 시리즈 최대 규모 작품이 가장 좁은 유저 풀에 갇혔습니다.
5. 손 안으로: 컬드셉트 DS (닌텐도 DS, 2008)
시리즈 10주년 기념작이자 첫 휴대용 게임기 진출작입니다. 발매는 세가가 맡았습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가겠습니다. DS판은 세컨드 계열이 아니라 PS1 익스팬션을 기반으로 한 이식작입니다. 스토리와 카드 구성이 익스팬션을 따라가고, 세컨드 이후 폐지됐던 ‘종족’ 룰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신 성채 통과 시 마력을 얻는 ‘요새 보너스’, 2대2 ‘동맹전’ 같은 세컨드 이후의 개선점을 부분적으로 흡수했습니다.
체감상 이 작품의 진짜 의미는 Wi-Fi 대전에 있습니다. 아무나 대전 / 친구 대전(보이스챗 지원)을 갖췄고, 로딩 없는 휴대기 특유의 템포 덕에 “한 판만 더”가 가능해졌습니다. 스토리 모드 클리어에 약 10시간, 그 과정에서 기본 룰이 자연스럽게 손에 붙도록 설계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6. 재탕과 논란: 컬드셉트 (닌텐도 3DS, 2012)
제목이 다시 그냥 컬드셉트 입니다. 이번엔 세컨드 익스팬션을 기반으로 대폭 리뉴얼하고, 여기에 사가의 카드를 섞었습니다.
편의 기능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튜토리얼과 힌트 강화, 필요 없는 카드 3장을 새 카드 2장과 바꾸는 ‘마켓’, 시간을 멈추고 상대가 낸 카드 성능을 확인하는 ‘드로 포즈’ 등이 추가됐습니다.
문제는 카드 풀이었습니다. 세컨드 시절의 강력한 카드가 대거 삭제됐고(마력 수입 스펠 대부분, 랜드 트랜스 너프 등), 코어 팬들에게서 “전술의 폭이 줄었다”는 원성이 쏟아졌습니다. 온라인 대전 환경을 고려한 조정이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지금도 이 판본은 평가가 갈립니다.
7. 10년 만의 신작: 컬드셉트 리볼트 (닌텐도 3DS, 2016)

전작이 짜깁기였다면 이쪽은 진짜 완전 신작입니다. 수록 카드는 445종(+브리드 카드). 시스템도 손봤고 비술, 감응, 밀명, 세계저주 같은 새 메커니즘이 들어갔습니다.
주사위가 2개(각 1~5, 문양 조합에 따라 최대 12)로 바뀌면서 이동 거리 설계가 통째로 달라졌고, 상대 카드를 즉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등 정보 공개 폭도 넓어졌습니다. 스토리는 카드 사용이 금지된 도시 ‘카드폴리스’를 배경으로 한 신규 세계관입니다.
일본에서는 닌텐도가, 해외에서는 NIS 아메리카가 2017년 10월 발매했습니다. 2008년 사가 이후 9년 만의 서구권 정식 출시였습니다.
한국어 정식 발매는 없었습니다. 다만 발매 10주년인 2026년 7월, 비공식 한글패치가 공개됐습니다.
8. 그리고 2026년, 두 개의 신작
컬드셉트 비긴즈 (Switch, 2026)

리볼트 이후 정확히 10년입니다. 테크미라 홀딩스 산하 네오스가 발매하고, 원작사 오미야 소프트가 전면 감수를 맡은 정통 후속작입니다. 전 세계 동시 발매이며, 한국어판은 대원미디어가 유통합니다. 세컨드 익스팬션 이후 23년 만의 공식 한국어 컬드셉트입니다.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카드’가 아니라 ‘석판(컬드)’입니다. 제목이 ‘비긴즈’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신이 창조한 창조의 서 컬드셉트, 그 조각인 석판을 다루는 자들이 셉터입니다. 1편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 주인공은 소년 카무르입니다. 왕립 학부 셉트 아카데미아에 전학 온 그가, 최초의 셉터 중 한 명인 아버지 루트라(오리진)의 행방을 쫓습니다.
- 카드 400종 이상, 아트 전면 쇄신. 캐릭터·크리처 디자인은 마츠우라 사토시가 맡았습니다.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는 ‘바브라슈카 대륙’이 무대입니다.
- 북 구성이 40장으로 줄었습니다. 오랫동안 50장이었던 덱 사이즈가 줄면서 스테이지별 플레이 타임도 짧아졌습니다.
- 스위치 2 에디션 전용 기능이 있습니다. ‘나눔 통신’으로 소프트를 갖지 않은 상대까지 최대 4인 대전이 가능하고, 마우스 조작을 지원합니다. 온라인은 ‘대전 룸’ 외에 ‘퀵 매치’가 추가됐습니다.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패미통 리뷰어들은 “모노폴리와 카드 배틀을 결합한 완성도 높은 시스템은 그대로”, “UI가 정리되고 스테이지 플레이 타임이 짧아져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쪽으로 8~9점을 줬습니다. 스토리 클리어까지 약 20시간, 전 퀘스트 클리어까지 약 40시간이 기준선입니다. 다만 새 카드 일러스트에 이질감을 느끼는 올드 팬이 있고, 후반부로 갈수록 카드 관리·덱 빌딩 UI의 편의성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Steam판은 2026년 4분기 예정입니다.
컬드셉트 더 퍼스트 (다중 플랫폼, 2026)

시티 커넥션이 내는 세가새턴 1편의 복각판입니다. 되감기, 퀵 세이브/로드, 보너스 팩(대전 종료 시 보상 카드 증가), 상대 패 공개, 일본어/영어 전환 등 편의 기능이 붙었습니다. 1편이 영어로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비긴즈 한정판(특장판)에 스위치용 더 퍼스트 패키지판이 동봉되는 구성이라, 실질적으로는 7월 16일에 먼저 풀렸습니다.
전체 목록 정리
| 연도 | 타이틀 | 플랫폼 | 카드 수 | 비고 |
|---|---|---|---|---|
| 1997.10.30 | 컬드셉트 | 세가새턴 | 360 | 시리즈 원점 |
| 1999.05.01 | 컬드셉트 익스팬션 | PS1 | 361 | 밸런스 조정 이식 |
| 2000.11.30 | 익스팬션 플러스 | PS1 | 361 | 염가판 + 추가 맵 20면 |
| 2001.07.12 | 컬드셉트 세컨드 | 드림캐스트 | 459 | 이토 켄지 참여 시작 |
| 2002.09 | 세컨드 익스팬션 | PS2 | 492 | 2003.10.16 한국어판 |
| 2006.03.06 | 모바일 어나더 챕터 | 휴대폰 | — | 외전 |
| 2006.11.22 | 컬드셉트 사가 | Xbox 360 | 487 | 시나리오 우부카타 토우 |
| 2008.10.16 | 컬드셉트 DS | 닌텐도 DS | — | 10주년, 익스팬션 기반, 첫 휴대기 |
| 2012.06.28 | 컬드셉트 | 닌텐도 3DS | — | 세컨드 익스팬션 기반, 카드 삭제 논란 |
| 2016.07.07 | 컬드셉트 리볼트 | 닌텐도 3DS | 445 | 완전 신작, 신 메커니즘 |
| 2026.07.16 | 컬드셉트 비긴즈 | Switch / Switch 2 / Steam | 400+ | 23년 만의 한국어판 |
| 2026.07.30 | 컬드셉트 더 퍼스트 | Switch / PS5 / XSX | S / Steam | 3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