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테일 게임즈는 어떻게 망했고, 어떻게 돌아왔나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 게임 리뷰나 기사에서 텔테일 게임즈(Telltale Games)를 언급할 때 흔히 스쳐 지나가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그 한 줄 뒤에는 250명이 넘는 직원이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고, 퇴직금 한 푼 없이 쫓겨난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이름의 회사를 다시 세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텔테일 게임즈가 어떻게 정점에서 파산까지 갔는지, IP는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그리고 지금의 “텔테일 게임즈”는 무엇인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했습니다.
1. 작은 어드벤처 스튜디오에서 “스토리텔링의 대명사”로
텔테일 게임즈는 2004년에 설립된 스튜디오로, 초기에는 Bone, CSI 시리즈 같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작은 개발사였습니다. 회사의 운명이 바뀐 계기는 2012년 The Walking Dead 게임화 판권을 따낸 것이었습니다. 선택과 분기, 감정적인 서사를 앞세운 에피소드형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공식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텔테일은 곧바로 The Wolf Among Us, Batman, Game of Thrones, Minecraft: Story Mode, Guardians of the Galaxy, Borderlands 등 유명 IP를 대거 끌어와 동시다발적으로 게임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회사의 몸집과 업무량이 비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스튜디오 규모에 비해 감당하기 어려운 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직원들은 비현실적인 마감에 시달렸고, 크런치(장기간 초과 근무)가 상시화됐다는 내부 폭로가 이어졌습니다. 2018년 초 The Verge가 보도한 심층 취재에서는 텔테일 내부의 독성 조직문화와 끝없는 크런치, 그리고 게임플레이 다양화를 거부한 경영진에 대한 개발자들의 불만이 상세히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2. 몰락의 전조: 2017년 CEO 교체와 대량 해고
균열은 2017년 초에 이미 드러났습니다. 창업자 중 한 명이었던 CEO가 물러나고, 외부 출신 경영진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며 투입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텔테일은 2017년 12월 전체 인력의 약 25%를 해고하는 “내부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새 경영진은 “양보다 질”을 내세우며 동시 진행 프로젝트 수를 줄이고 소수의 타이틀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환은 너무 늦었습니다. 이미 발표되고 제작에 들어간 프로젝트들은 완성까지 갈 길이 멀었고, 회사의 재무 상태를 지켜보던 투자자들은 추가 자금 지원을 끊었습니다. 결국 회사는 자금줄이 마른 채로 버티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3. 2018년 9월 21일: 90분 만에 끝난 회사
2018년 9월 21일 금요일, 텔테일 직원들은 출근할 때만 해도 평범한 하루를 예상했습니다. The Walking Dead: The Final Season의 두 번째 에피소드가 다음 주 출시를 앞두고 있었고, 여러 팀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전 직원에게 한 시간 반 전 갑작스러운 전체 회의 소집 메일이 발송됐습니다. 회의에서 당시 CEO 피트 홀리(Pete Hawley)는 “텔테일에게 매우 힘든 한 해였다”며 대규모 감원과 사실상의 폐업을 발표했습니다. 약 250명의 직원 중 90%에 달하는 인원이 그 자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고, 회사의 대외적 의무를 정리할 소수 인원 25명만 남았습니다. 해고된 직원들은 퇴직금 없이, 그날치 급여가 담긴 종이 수표만 받고 30분 안에 짐을 싸서 건물을 떠나야 했으며, 건강보험도 그달 말이면 종료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미국 WARN법(대량 해고 시 최소 60일 전 통지를 요구하는 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낳았고, 실제로 전직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회사 측은 “예측 불가능한 경영 상황”이라는 예외 조항을 근거로 방어에 나섰습니다.
당시 남은 25명의 소규모 팀은 이미 파산 신청을 진행 중이던 회사에서 The Walking Dead: The Final Season의 미완성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The Wolf Among Us 2나 Stranger Things 게임처럼 발표됐던 다른 프로젝트들은 사실상 전부 취소됐습니다.
4. IP는 스카이바운드와 넷플릭스로
폐업 이후 텔테일의 게임 IP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 The Walking Dead: 원작 만화 및 프랜차이즈를 소유한 스카이바운드 엔터테인먼트(Skybound Entertainment)가 텔테일과 협의해
The Final Season의 남은 에피소드 제작권을 넘겨받았습니다. 이 덕분에 3화는 2019년 1월, 마지막 4화는 같은 해 3월 정식으로 출시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스카이바운드는 네 시즌을 모두 묶은 컬렉터스 팩도 발매했습니다. - Minecraft: Story Mode: 판권을 쥐고 있던 넷플릭스가 자체적으로 서비스를 이어갔습니다.
- 그 외 자산: 텔테일이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회사가 보유했던 브랜드, 트레이드마크, 기술(자체 엔진인 텔테일 툴 포함), 그리고 일부 IP 라이선스는 파산 자산 매각을 관리하던 셔우드 파트너스(Sherwood Partners)를 통해 매물로 나왔습니다.
5. 폐허 위의 재건 – LCG 엔터테인먼트의 인수
텔테일이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은 2018년 12월 27일,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새 지주회사 LCG 엔터테인먼트(LCG Entertainment) 덕분입니다. 이 회사를 이끈 것은 게임 업계 경력을 가진 제이미 오틸리(Jamie Ottilie)와 브라이언 와들(Brian Waddle)이었습니다. 오틸리는 이전에 모바일 게임 개발사 갤럭시 페스트 컨트롤(Galaxy Pest Control)을 창업한 인물입니다.
LCG는 2019년 2월부터 셔우드 파트너스와 협상을 시작해 6개월 넘는 협상 끝에 2019년 8월 28일, 옛 텔테일의 핵심 자산·트레이드마크·기술·일부 IP 라이선스를 인수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인수에는 크리스 킹슬리, 라일 홀, 토비아스 셰그렌 같은 업계 인사들과 퍼블리셔 애슬론 게임즈(Athlon Games)가 투자자 겸 파트너로 참여했습니다. 새 회사는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본사를, 코르테 마데라에 위성 스튜디오를 두고 “텔테일 게임즈”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주의할 점은, 이 새로운 텔테일이 인수한 것은 어디까지나 브랜드와 일부 자산·라이선스일 뿐, 2018년 이전의 텔테일과는 법적으로도 인적으로도 다른 회사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The Walking Dead처럼 이미 스카이바운드나 넷플릭스로 넘어간 IP는 새 텔테일의 소관이 아닙니다. 오틸리 CEO도 “클레멘타인의 이야기(The Walking Dead)를 우리가 마무리 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은 바 있습니다.
2023년 2월에는 새 텔테일이 히로 캐피털(Hiro Capital)과 스카이바운드 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한 시리즈 A 투자로 800만 달러를 유치하며 첫 우선주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했습니다. 2023년 기준 직원 규모는 약 40명 수준으로, 전성기 텔테일(약 370명)에 비하면 훨씬 작은 조직입니다.
6. 재건의 상징,The Wolf Among Us 2 시작
새 텔테일이 부활을 상징적으로 내세운 프로젝트가 바로 The Wolf Among Us 2입니다. 2013년작 The Wolf Among Us의 속편은 원래 옛 텔테일 시절인 2017년경 예고됐다가 2018년 폐업으로 무산됐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새 텔테일은 옛 텔테일 출신 인력들이 세운 외주 스튜디오 애드혹 스튜디오(AdHoc Studio)와 협업해 이야기와 연출을 맡기고, 텔테일 본사가 게임플레이와 디자인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제작을 재개했습니다. 2022년 공개된 트레일러와 함께 2023년 출시가 예고됐지만, 곧 연기가 발표됐습니다. 오틸리 CEO는 게임을 언리얼 엔진 4에서 5로 전면 교체하는 작업과, 크런치를 피하려는 결정 때문에 연기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2023년에는 창작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애드혹 스튜디오가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시점까지 애드혹이 시즌 전체 대본을 완성한 상태였음에도, 이후 개발은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2024년 텔테일은 게임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며 “때가 되면” 더 많은 소식을 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로도 눈에 띄는 진전 소식은 뜸했습니다.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2026년 초 보도에 따르면 개발팀은 2025년 말 기존 작업물을 폐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만들기 시작했으며, 목표 출시 시점은 2027년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런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도 텔테일은 2026년 서머 게임 페스트에서 The Wolf Among Us 2의 새 트레일러와 데모를 공개하며 사실상 “새로운 텔테일”의 재출범 신호탄으로 삼았습니다. 이번에는 에피소드 단위가 아닌 완성된 하나의 게임으로 출시하겠다고 밝혔고, 원작의 빅비 울프·스노우 화이트 성우진도 대거 복귀시켰습니다.
7. 정작 “텔테일다운 게임”은 애드혹에서 나왔다
The Wolf Among Us 2에서 손을 뗀 애드혹 스튜디오는 그 뒤로 놀고 있지 않았습니다. 애드혹은 텔테일 시절 The Walking Dead와 Tales from the Borderlands를 이끈 감독 닉 허먼(Nick Herman)을 비롯해 텔테일 출신 개발자들이 2018년에 세운 스튜디오로, 2024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 자체 오리지널 신작 Dispatch를 처음 공개했습니다.
디스패치(Dispatch) 리뷰 – 슈퍼 히어로물이지만 시트콤 느낌
Dispatch는 초능력을 잃은 히어로가 초능력자 콜센터의 관리자가 되어 팀원들을 현장에 배치한다는 설정의 “슈퍼히어로 오피스 코미디”로, 배우 애런 폴(Aaron Paul)이 주인공을 맡고 크리티컬 롤(Critical Role) 팀이 협업에 참여하는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2025년 10월 22일부터 8개 에피소드가 순차 공개되는 방식으로 출시됐는데,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스팀 어워드 스토리 부문을 수상했고, 다수의 게임 매체가 “텔테일 방식을 제대로 계승한 게임”, “텔레비전 드라마를 플레이하는 느낌을 처음으로 제대로 구현한 게임”이라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아이러니가 하나 생깁니다. 정작 “텔테일 게임즈”라는 브랜드를 물려받은 새 텔테일은 The Wolf Among Us 2를 몇 년째 완성하지 못한 채 개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반면, 텔테일을 떠난 사람들이 세운 별도 회사는 브랜드 없이도 “텔테일다운” 게임을 먼저, 그것도 훨씬 큰 성공과 함께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결국 텔테일 게임즈의 진짜 유산은 회사 이름이나 인수한 자산이 아니라, 그 조직을 거쳐 간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노하우에 더 가깝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입니다.